가치관의 충돌은 양자 택일이 아니다. hier.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통해 속시원히 이야기 하고 싶었었다.
어릴적만 해도 싸움을 기피하는 것이 제일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주먹싸움은 물론 말싸움조차 되도록 피했으며,
나에게 억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다면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서 합리적으로 화해하고
그를 이끌어 내는 것, 똘레랑스로써 이해해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서로간의 합의점을 찾기 위한 것이든 아니면 목적없이 시작된 감정싸움이든 간에
그때는 싸움이 싫었고 기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내 생각과 관점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꾹꾹 억누르는 것이라는 것을
또 그것이 똘똘 뭉쳐져서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옴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마찬가지
한 현상을 일으키는 대통령부터 . 정치 관료들과 그 외 수많은 시스템들
한 현상이 일어나고 그것에 자신만의 논리적 의견을 토해내는 여러 시민사회.
그리고 잘못된 현상이 있다면 바로 잡아가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싸움을 기피하는 것이 결코 올바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싸우도록 싸움판을 열어주는 사회, 토론의 활성화 , 계급을 넘어선 말토론 , 택시기사의 정치얘기

이 모든 것이 건강한 사회를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북한식사회주의(1인지배체제인 요상한 주의)나 전체주의는 가치관 측면에서 굉장히 안정적인 사회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더불어 어릴 적 여러 모순에 충돌하면서 끝까지 안정적인 나를 유지하려고 했던 내 모습 역시 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꽤 오래된 이야기지만 미국의 부시가 부정선거로 당선되었을 당시 그냥 아무렇지 않게 패배수락 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며
웃기지만 우리나라였으면 난리났겠다.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사회는 사회통합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미국보다 훨씬 더 공론의 장이 잘 개방되어있는 민주적인 사회이고 ,
가치관의 충돌을 용인해 주는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던 사건이었다.


그후로 정권이 바뀌면서
오늘이 왔고,
미국쇠고기수입, 대운하부터 4대강사업, 그리고 여러가지 모든 사안들에서도 이러한 갈등충돌 문제를 보아오면서
물론 2년간 내 머릿속의 공백이 존재하지만


막으려고. 또 막으려고. 하는 모습들이 한심하게 내 눈에 비추어질 뿐이다.


물리적폭력이 시작되는 순간
어떠한 논제나 의견이 묵살됨과 동시에 문제의 본질이 폭력으로 옮겨붙는다는
아놀드토인비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드는 요즘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트위터위젯

magenetic youth radio vol.1